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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회사원의 상념

기다리면 되나요?

"안녕하세요 ㅇㅇㅇ 고객님, 주문하신 상품이 품절로 인해 부득이하게 취소 처리되었으며, 아래와 같이 즉시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늦은 오후 정적을 깨뜨리며 핸드폰으로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내용은 며칠 전 주문했던 옷이 품절되었다며 환불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미 찬바람이 불어와서 가을 옷은 입지도 못하고 겨울 코트를 꺼내 입었어야 할 판이었는데 요즘은 날씨가 따뜻해서 아직까지도 가을 옷이면 괜찮다며 버티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덕분에 미루고 있었던 가을 코트를 하나 샀는데 이게 품절이라니...

 

사실 이 옷은 작년에도 이미 사고 싶어서 내내 보고만 있었던 옷이었는데 그렇게 지켜보고 고민만 하다 보니 어느새 계절은 겨울로 넘어가 버렸고 사놓고 한 두 번 못 입을 것 같아 그냥 포기하고 말았던 옷이었다. 게다가 조금 기다리면 가격도 좀 낮아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어서 구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났는데도 취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특별히 유행을 탈 만큼 화려한 옷도 아니었고 기본 코트였으니 하나쯤 사둬도 크게 문제없지 않을까 하는 자기 합리화와 함께 늦게나마 주문을 했었던 것이 이젠 없어졌다.

 

살면서 일부러 나중을 기약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이 미루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무작정은 아니고 다음에 해도 괜찮겠지? 또는 조금 더 기다리면 좀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거야 라는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결정이 매번 좋은 결과만을 가져올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젠가 다음에 써야지 하며 받아놓은 쿠폰 한두 장쯤은 있을 것이다. 사용하지 않고 쌓여있는 포인트나 마일리지 등이 있을 수도 있고, 맘에 들어서 사고 싶었는데 그 당시 구입하지 않아서 놓쳐버린 물건에 관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물론 고가의 사치품, 불필요한 충동구매 등은 제외하고 일반적인 경우에 대해서 말이다.

 

결국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일들이 있다. 매번 돌아온다고 하지만 파격 할인이라는 광고 문구를 붙이고 판매하는 세일 상품이라던가, 품절 임박이란 압박 아닌 압박으로 소비를 종용하는 것들에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물건을 사는 것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삶을 살아갈 때도 모든 것에 중요한 때가 있다. 배움에는 때가 있다고 하고 사랑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말을 쉽게 한다. 물론 세상 모든 게 딱 이거다 라고 정해진 게 있겠냐만은 신체적으로 뇌가 활발히 돌아가는 시기가 있고, 두 사람이 만나서 감정을 교류하고 호르몬의 자극으로 인해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는 시기에도 다 기간이 있다는 건 이미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니 무작정 부정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흐른다. 아직은 품절되지 않을 거야라는 기대와 함께 조금만 더 싸지면 주문해야지,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 성공하면 효도해야지 하는 등 막연한 기다림을 하기엔 세상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새로운 제품들이 나오면 기존 제품이 단종되기도 하고, 주위에 소중한 사람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떠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구입을 미루다 시기를 놓쳐서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옷이 있기도 하고, 지금은 바쁘다며 다음에 연락을 주겠다던 소개팅 상대방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것처럼 지금 당장이 아니면 안 되는 일들이 있다.

 

기다리면 되나요? 네, 품절이 됩니다.

 

#Photo by Mak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