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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회사원의 상념

우산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쏴아아아아"

 점심을 먹으러 회사 로비로 내려와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하늘에서는 매우 거대한 빗줄기가 쏟아져 내려왔다. 내 손에 들고 있는 오래된 3단 우산, 이 우산을 쓰고 저 빗속을 가로지를 것인가, 아니면 그냥 좀 기다렸다가 비가 그치면 나갈 것인가, 잠깐의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빗줄기는 점차 줄어들었고 그렇게 점심을 먹기 위해 로비를 벗어났다.

 

  손에 들려진 3단 우산, 언제였을지 모르지만 언젠가부터 나와 함께 하고 있는 매우 오래된 물건이다. 비가 오거나 혹은 비가 오지 않더라도 항상 가방에 챙겨 다니기 때문에 내 가방의 무게는 항상 이 우산의 무게가 더해져 있었고, 그 기간 또한 매우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듯하다. 언젠가부터 우산을 항상 가방에 넣고 다녔을까 하는 물음은 대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들보다 1년 더 늦게 대학 생활을 시작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어딘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어색한 성격 탓이었을까, 보통 수업을 듣고 혼자 다니는 시간이 많은 시기였다. 물론 다 같이 어울려 한 공간에서 수업을 듣던 고등학교 시절과는 다른 수업방식도 한몫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그저 단순한 핑곗거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게 혼자 걷던 시간에 갑자기 비가 내린다거나 수업을 듣고 나왔을 때 비가 내리는 길을 가야 하는 상황에서 안 그래도 혼자였던 나는 비마저 맞으며 혼자 걷기가 너무 싫었던 것 같다. 단순히 내리는 비를 막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누군가 나에게 왜 맨날 우산을 갖고 다니냐는 질문에 혼자 걷는데 비 맞고 다니면 처량하지 않겠느냐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대학시절과는 달리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 안에서 보내게 되고, 회사도 지하철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우산을 매번 챙기고 다녀야 할 필요성을 많이 느끼진 못하지만 여전히 이 낡은 우산은 나와 함께 하고 있다. 너무 오래되어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지만 아직 뭐 이 정도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과 새 우산을 사야 하지만 귀찮아서 미루고 있는 마음 사이에서 언제나 내리는 빗속에서 날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정도 전의 일이다. 약속이 있어서 회사를 마치고 이동하며 지하철을 타기 전 날씨가 흐려져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히 가방 속에 우산이 있을 거란 생각으로 가방 속을 열어보지도 않고 이동을 하였는데 약속이 다 끝나고 집에 가려고 나오는데 하늘에선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때야 비로소 가방을 열어 우산을 찾기 시작했지만 너무도 당연히 가방 속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우산은 아무리 뒤져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어주던 우산이었는데 정작 이렇게 필요할 때 없다니, 게다가 너무도 당연히 있을 줄 알아서 확인조차 하지 않았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었다.

 

  흔히 하는 말처럼 항상 함께 하고 있어서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지금 이 순간 인지하고 못하고 있는 공기부터 시작해서 언제나 곁에 있어 줄 것만 같은 가족, 그리고 항상 가지고 다니던 오래된 우산까지. 누구에게나 익숙함이라는 단어는 그것에 적응된 상대의 존재를 흐리게 만들거나 작게 만들어 버린다. 이래도 괜찮겠지라는 생각 또한 남들보다 더 소중하게 대해야 할 존재에 대해 소홀하게 만들어 버린다. 언젠가 오늘과 같이 장대와 같이 비가 내리는 날, 내게 있지 않은 오래된 우산을 아쉬워하기 전에 항상 함께하는 주변의 존재들에 관심을 좀 더 가져보는 건 어떨까.

 

#Photo by Anh Nguye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