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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회사원의 상념

에스컬레이터에서 걷지 않을 이유

  “다음 열차 도착까지 6분 전”

  출근시간까지 30분도 남지 않은 아침, 지하철 개찰구에 붙은 전광판에 숫자는 야속하게도 6분이란 숫자를 나타내고 있었다. 여기는 7호선 어느 역.

 

  출입구까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도대체 왜 이렇게 땅을 깊게 파 놓은 걸까 하는 생각을 매번 하게 할 만큼 깊었고 멍하니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하염없이 땅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오만가지 잡생각이 떠올랐다.

 

  매일 아침 출근 시간, 지하철 전광판은 열차 도착시간을 알려준다. 곧 도착 예정이거나 전역이거나, 혹은 전 전역이거나. 대충 개찰구와 입구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나는 가끔은 걷거나, 가끔은 서 있거나, 혹은 계단을 이용해 미친 듯이 뛰어 내려가곤 한다.

 

  그래 결국 지하철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이미 만들어진지 수년도 전이었을 지하철을 요 근래 이용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나는 지하철에게 항의할 자격이 없을 것이다. 그 자리에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름 아침 언제 도착하느냐에 따라 걷거나 뛰거나, 나의 행동과 심리상태는 달라지고 있었다.

 

  결국 이미 뛰어가더라도 늦게 도착할 것을 아는 상황에서 굳이 뛰지 말라고 광고 방송까지 하고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내려갈 이유는 나에게 1도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 내 인생에 다음 이벤트가 언제 시작될 것이라는 걸 알게 해 준다면 나도 좀 편하게 살 수 있을까? 이 넓은 세상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만들어져 있었고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어딘가로 떠나기 위한 지하철을 타야만 한다면 거기까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가능하면 걷거나 뛰고 싶지 않다. 어차피 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내려가는데 왜 힘들게 굳이?...라는 생각과 함께.

 

#Photo by jon tyson on Unsplash